
청국장 1g에 유산균이 10억 마리 들어있다는 주장이 방송과 신문을 통해 퍼지고 있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아, 청국장도 김치처럼 발효식품이니까 당연히 유산균이 있겠구나" 하고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미생물학 자료를 찾아보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청국장의 발효균은 유산균이 아니라 고초균이라는 완전히 다른 세균이었던 겁니다.
## 청국장 발효균의 정체, 유산균이 아닌 고초균
청국장을 만드는 균은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라는 고초균입니다. 이 균은 유산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세균으로, 단백질 분해 능력이 뛰어나 콩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쪼개 특유의 구수한 맛을 만들어냅니다. 일본의 낫또 발효균인 바실러스 낫또(Bacillus natto)도 사실상 같은 균의 아종으로, 청국장과 낫또는 이름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식품입니다.
유산균이라는 이름은 당을 발효시켜 유산(젖산)을 50% 이상 생성하는 균에만 붙는 명칭입니다. 고초균은 단백질 분해효소를 생산하는 균이지, 유산을 만드는 균이 아닙니다. 저도 예전에 청국장 끓여 먹으면서 "유산균 보충된다"고 믿었던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완전히 다른 균을 먹고 있었던 셈입니다.
더 황당한 건 방송에서 청국장을 끓여놓고 유산균이 풍부하다고 소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설령 유산균이 있었다 해도 끓는 물에서는 순식간에 사멸합니다. 고초균은 포자 형태로 열에 강하게 버틸 수 있지만, 영양세포 상태에서는 역시 고온에 약합니다. 청국장에 유산균이 조금 섞여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제조 과정에서 우연히 묻어든 잡균 수준일 뿐입니다.
## 나토키나제 혈전 용해 효과의 실체
청국장이 건강식품으로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나토키나제라는 효소 때문입니다. 시험관에서 응고된 혈액에 청국장 콩알을 올려놓으면 실제로 혈전이 녹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실험 결과가 방송을 타면서 "청국장이 혈관 속 혈전을 녹인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시험관 속 반응과 우리 몸속 반응은 완전히 다릅니다. 저도 한때 혈액순환 개선을 기대하며 청국장 분말 제품을 꾸준히 먹어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체감되는 변화는 전혀 없었습니다. 나토키나제는 거대 분자인 효소 단백질이라 경구로 섭취했을 때 소화 과정에서 대부분 분해됩니다. 위산의 강한 산성 환경을 통과하고, 소장에서 단백질 분해효소의 공격을 받으면 본래 구조가 무너져 효소로서의 기능을 잃습니다.
설령 극소량이 온전하게 흡수된다 해도, 그 효소가 혈관 속에 들어가 혈전용해 작용을 한다는 것은 생리학적으로 무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병원에서 혈전 치료에 쓰는 효소는 정맥 주사로 직접 투여하며, 인체의 면역 반응을 고려한 특수 효소를 사용합니다. 청국장 먹고 혈전이 녹는다면 의료 현장에서 진작 활용했을 겁니다.
## 김치·막걸리 유산균도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청국장만 유산균 논란의 중심은 아닙니다. 김치와 막걸리도 "요구르트보다 유산균이 수십 배 많다"는 주장이 난무합니다. 김치는 분명 유산균 발효 식품이 맞지만, 유산균의 수는 발효 정도와 보관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지나치게 신 김치는 오히려 산도가 높아져 유산균이 사멸한 상태일 수 있고, 대부분의 유산균은 건더기보다 국물에 있어 김치만 건져 먹으면 유산균 섭취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막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발효 초기에는 유산균이 효모의 생육을 돕는 역할을 하지만, 막걸리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알코올을 만드는 효모균입니다. 유산균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술맛이 시큼해져 품질이 떨어집니다. 제가 직접 생막걸리를 며칠 두고 마셔본 경험상, 시간이 지날수록 신맛이 강해지면서 풍미가 사라지더군요. 유산균이 많다고 반드시 좋은 막걸리는 아닙니다.
"금속수저에 닿으면 유산균이 죽는다"는 속설도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금속 접촉으로 죽는 미생물은 없으며, 이는 요구르트 회사의 플라스틱 스푼 마케팅에서 비롯된 오해일 가능성이 큽니다.
청국장, 김치, 막걸리 모두 우리 식문화의 소중한 발효식품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만병통치 건강식품으로 과대포장하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이제 청국장을 구수한 맛을 즐기는 음식으로만 바라보고, 유산균 보충이 필요하면 검증된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따로 챙깁니다. 식품은 식품으로, 영양제는 영양제로 분리해서 접근하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과 신문에서 쏟아지는 건강정보를 무조건 믿기보다는, 과학적 근거를 확인하고 내 몸의 반응을 직접 살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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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thesciencelife.com/archives/1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