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이 일반 식품의 기능성 광고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제품에 '소화 촉진', '혈당 감소' 같은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처분받은 영업자가 법원에서 승소한 겁니다. 저는 이 소식을 접하고 제과점 주방에서 매일 겪던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좋은 재료를 쓰고도 그 장점을 제대로 알릴 수 없었던 현실이, 어쩌면 조금씩 바뀔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뒤집은 '원료 설명'의 경계선
이번 판결의 핵심은 '원료에 대한 설명'과 '제품 자체의 기능성'을 분리해서 본 점입니다. 법원은 영업자가 광고에서 '원료'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제품이 아닌 원료의 특성을 설명했고, 일반식품임을 명시하여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할 가능성을 차단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서 '건강기능식품'이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기능성을 인정한 원료를 사용하여 특정한 건강 효과를 표시할 수 있도록 법으로 허가받은 제품을 의미합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저도 제품 패키지를 디자인할 때 비슷한 고민을 매일 합니다. 통밀 함량이 높은 빵을 만들면서 "식이섬유가 풍부한 통밀 사용"이라고만 적고, "혈당 관리"라는 단어는 아예 꺼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번 판결처럼 원료의 일반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법적 위험을 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법원까지 가서 다툴 각오를 해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부담스럽지만요.
행정청인 구청장은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하급심 판결이라 법적 구속력이 크지는 않지만, 비슷한 사례가 계속 나온다면 현행 규제 체계에 큰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고시 중심 규제의 한계와 현실
현재 식품의 기능성 표시는 건강기능식품법과 식품표시광고법, 그리고 수많은 고시로 촘촘하게 규율됩니다. 2020년 시행된 「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로 보지 아니하는 식품등의 기능성 표시 또는 광고에 관한 규정」은 특정 29개 기능성 원료를 사용한 제품에 한해 제한적으로 기능성 표현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능성 원료'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식약처가 건강에 도움을 주는 효과를 인정한 성분을 뜻합니다.
문제는 이 고시의 내용이 너무 복잡하다는 겁니다. 저도 실무에서 고시 [별표 1]의 영양성분 기준과 [별표 2]의 기능성 표현 범위를 찾아보려면 여러 문서를 오가며 한참을 헤맵니다. 심지어 지자체 위생과 공무원조차 명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고, AI에게 물어봐도 정확한 답을 얻기 어렵습니다. 식약처 담당자도 "고시가 복잡해서 찾기 힘들다"고 토로할 정도니, 일반 영업자가 이를 완벽히 준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번 판결에서도 법원은 행정청이 제시한 고시 기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법원은 제품의 영양성분이 고시 기준을 충족하고, 광고 내용이 [별표 2]의 기능성 범위에 포함된다고 해석했지만, 정작 해당 제품이 29개 기능성 원료 중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사실은 전혀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고시 체계가 너무 복잡해서 법원조차 핵심을 놓친 것으로 보입니다.
비빔밥은 약이 아니다 - 상식의 경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일관되게 "일반 식품에 기능성을 표현하더라도,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할 정도가 아니고 식품 본질을 유지하는 한도 내라면 허용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쉽게 말해, 비빔밥에 아무리 건강 효능을 설명해도 소비자는 비빔밥을 밥으로 먹지 약으로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이 논리에 깊이 공감합니다. 제가 만드는 호밀빵은 결국 식사 대용이거나 간식이지, 누가 봐도 약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행 규제는 "호밀의 식이섬유가 배변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원료의 자연스러운 특성조차 표현하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바로 이 지점에서 행정청의 경직된 잣대보다 소비자의 상식에 손을 들어준 사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도 남습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원료를 무분별하게 광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사이비 건강식품'이 시장을 교란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표준화되지 않은 일반 원료를 '혈당 감소', '면역력 강화' 같은 자극적인 문구로 포장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무너진다면, 결국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의 방향 - 친절한 법규를 기대하며
이번 판결 이후 식약처가 어떤 방향으로 규제를 재정비할지가 핵심 변수입니다. 중요한 사항은 법률에 근거를 두고, 복잡한 고시는 수범자 입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를 재편해야 합니다. 일반 식품의 기능성 표시를 허용하되, 과학적 입증 책임의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저는 매일 오븐 앞에서 조리복 주머니에 메모장을 꽂고 고민합니다. 좋은 재료를 쓰고도 그 장점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이 '언어의 장벽'이 언제쯤 낮아질까 하고요. 주요 개선 방향은 다음과 같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일반 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의 본질적 차이를 명확히 정의하고, 오인 방지 기준을 구체화
- 일반 식품이 원료의 자연스러운 특성을 표현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 수준을 합리적으로 설정
- 복잡한 고시 체계를 법률로 상향 입법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비
물론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작은 돌파구가 되어, 영업자도 소비자도 모두 합리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친절한 법규'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번 판결은 식품 표시 규제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신호탄입니다. 행정청의 획일적인 단속보다 소비자의 상식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유연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저처럼 현장에서 매일 고민하는 영업자들에게는 희망이자 동시에 새로운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판결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식약처가 어떤 개선안을 내놓을지, 그리고 비슷한 판결이 계속 나올지 주목하며 지켜볼 생각입니다.
참고: https://www.thinkfood.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688